TREND/CULTURE
연남동의 좁은 골목길에서는 곳곳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만하고, 그곳을 일궈낸 사람의 감성으로 오롯이 차 있는 공간을. 풍경을 눈으로 훑으며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걷다 보면, 야트막한 오르막길 위에 놓여 있는 붉은빛 벽돌의 이층집을 마주하게 된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외벽과 대비되는 깨끗한 흰색 창문이 먼저 눈에 띄고, 그 후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이 시야에 들어온다. 팔락이는 깃발에 적혀 있는 필기체의 영어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 Cafe Layered, 카페 레이어드다.
카페 이름인 레이어드는 ‘층이 있는, 층을 이룬’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layered로, ‘옷을 레이어드해 입는다’라고 표현할 때의 패션 용어와 맥락을 함께한다. 1호점은 북촌에서 시작했는데, 북촌 한옥마을의 초입부에 영국식 디저트 베이커리를 오픈하는 것이 서로 다른 두 문화를 ‘레이어드’하는 행위라고 해석해 카페 이름을 레이어드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연남 레이어드는 생긴 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1호점을 웃도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18년 12월에는 가오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픈 소식을 듣고 몰려든 손님들 때문에 눈 내리는 연남동 골목에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질 정도. 과연 이 카페의 어느 점이 그토록 매력적일까.
레이어드에 들어서면 유럽의 어느 가정집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바닥과 벽, 천장에 전체적으로 밝은 아이보리 계열의 색감을 사용하여 공간이 탁 트여 보이면서도 넓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볕, 노르스름한 조명, 아기자기한 소품 덕분에 따스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소품 하나하나에 카페 레이어드만의 감성이 배어 있다.
“You have a crush on yourself”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영문 필기체와 낙서가 메뉴판은 물론이고 머그잔, 티슈, 벽, 거울에까지 카페 곳곳에 적혀 있다. 이 낙서는 레이어드의 직원들이 문구가 생각날 때마다 직접 적은 것이다. 공간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남긴 흔적이니 정겨울 수밖에. 언뜻 보면 읽을 수조차 없을 정도지만,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어떤 기록.
벽면마다 걸려 있는 액자는 레이어드의 감성을 따뜻하게 데우는 요소 중 하나다. 어떤 그림은 무채색의 고요함을 띠고 있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톡톡 튀는 화려한 색감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중세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금빛 액자는 유럽풍 분위기를 조성한다.
레이어드 연남은 기존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카페 구석구석에 집 같은 편안함이 묻어있다. 영국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한 감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레이어드의 대표 K의 말처럼, 어디에선가 푸근한 미소의 백발 할머니가 접시 위에 스콘을 받쳐 들고 우리를 반겨줄 것만 같다.
레이어드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은 베이커리 덕분이다. 먹음직스러운 모양의 스콘, 케이크, 머핀, 크럼블 등 수십 종류의 베이커리가 카페 메인 공간에 감각적으로 진열되어 있다. 한 카페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베이커리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이 모든 것이 ‘정말’ 맛있다는 사실은 이곳을 방문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테다.
투박하게 구워낸 스콘에는 딸기잼, 초콜릿, 말차 잼, 얼그레이 잼 등 갖가지 토핑이 올라가 있다. ‘스콘 맛집’으로 소문난 카페인 만큼 레이어드에 방문한다면 스콘은 꼭 맛보기를 추천한다. 꾸덕꾸덕한 질감의 브라우니, 생딸기를 통째로 얹은 크럼블, 파마머리의 푸들 크림을 얹은 퍼피 퍼피 케이크는 레이어드의 인기 메뉴.
고풍스러운 접시 위에 놓인 디저트들은 중세시대 부인들의 고상한 티타임을 떠올리게 한다. 디저트 접시 옆에 툭 던진 듯 놓여 있는 화병, 책, 양초 등의 오브제들은 그녀들이 즐기던 우아한 티타임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니까.
카페 레이어드는 과감하게 진열대가 아닌 홀 중앙으로 메뉴를 배치했다. 방문객들은 디저트 공간 옆에 준비된 접시와 집게로 먹고 싶은 베이커리를 직접 고를 수 있다. 유럽의 어느 길거리 마켓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플레이팅이 디저트를 더욱 먹음직스럽게 한다. 통통한 빵모자를 쓴 베이커가 수시로 접시를 채우며 진열 상태를 정돈한다.
스트로베리 크렘블은 특유의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다. 빵 위에 얹은 딸기잼과 생크림의 조합이 가히 환상적. 당근 케이크는 당근의 아삭한 식감과 크림치즈의 부드러운 맛이 조화로웠다.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함께라면 몇 조각이든 퍼먹을 것 같은 중독적인 맛.
레이어드는 여러 이들의 손이 모여 만들어졌다. 우리는 레이어드의 오픈 멤버인 K를 만나보았다. 하나로 묶은 머리,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고정한 검은 핀, 그리고 앞치마 군데군데에 묻어있는 밀가루 반죽. 그녀는 베이킹 룸에서 잠시 올라왔다며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Q. ‘레이어드 연남’은 어떤 공간인가요?
A. 제 영감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국에서 지낼 때 거처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어요. 그때 살았던 영국식 집에서 영감을 받아 ‘영국의 할머니 댁에 놀러가 할머니가 정성껏 만들어주신 스콘과 케이크를 먹는 시간’이라는 테마로 레이어드를 구상했습니다.
Q. 소품들이 감각적이에요. 모두 직접 구하신 건가요?
A. 그림이나 액자, 접시 등의 소품의 대부분은 유럽 여행 때 모은 것들이에요. 제가 구상한 테마와 어울리는 소품들을 골라 직접 배치했죠.
Q. 감각적인 플레이팅이 눈에 띄어요.
A. 플레이팅 역시 유럽 여행 때의 기억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유럽의 과일 가게나 길거리 마켓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진열 방법인데요. 제가 당시에 그 분위기에 끌려 소품을 소장하고 추억을 가지게 된 것처럼, 레이어드에 방문해주신 분들도 저희만의 감성에 끌리고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Q. 베이커리 코너가 풍성해요. 레이어드에게 베이커리가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소확행? (웃음) 말 그대로 저희의 베이커리가 레이어드 손님들의 소소한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Q. 1호점과는 다르게 2호점에는 베이킹 룸이 있네요?
A. 1호점은 공간이 협소해서 손님들께 보여드리고 싶었던 메뉴들을 만들기가 힘들었어요. 신메뉴 개발도 하고, 기존 메뉴에 대한 연구도 해보고 싶어서 2호점에는 일부러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어요. 가끔 밤샘 작업도 한답니다.
Q. 카페 레이어드의 메뉴 중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나요?
A. 음료 중에서는 에스프레소 크림 밀크를 추천해드려요. 비주얼도 예쁘지만 맛 역시 어딜 가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해요. 1호점에서부터 판매하던 메뉴라 오시면 항상 이것만 드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음료 코너는 신메뉴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스콘 중에서는 솔트 캬라멜 스콘을, 케이크 중에서는 빅토리아 케이크를 추천해요. 레이어드는 특히 스콘으로 유명한데요. 저희만의 레시피를 이용해 베이킹 룸에서 그날그날 갓 구운 스콘을 제공하기 때문에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특히 추천해드린 솔트 캬라멜 스콘은 직접 만든 캬라멜 소스를 얹어 나가기 때문에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저희만의 메뉴랍니다. 꼭 드셔 보셨으면 해요.
Q. 사람들에게 레이어드 연남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시나요?
A. 하나의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냥 ‘맛있었어’, ‘좋았어’, 하고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라,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그런 곳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연남동에 가면 레이어드에 들러보기를. 하루쯤은 가슴 한곳을 간지럽게 하는 그 말랑말랑한 감성에 푹 취해보길 바란다. 한입 베어물면 포슬포슬 부서지는 스콘과 따뜻한 커피, 그리고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이 당신의 일상에 작은 행복을 가져다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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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법감시인 심의필 제2019-E01356호 (2019.03.19)